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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아무말

컴맹이 컴공과에 오면 생기는 일들..💧

by 이지이즤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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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컴퓨터가 싫었다.
물론, “응애~” 대신 “컴맹~”하면서 태어난 건 아니다.

컴퓨터를 싫어했던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은 유치원 때이다.
거실에 컴퓨터가 하나 생겼고 오빠가 하루 종일 점령해도 나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컴퓨터실에서 하는 수업이 일찍 끝나면 주시는 자유시간이 가장 싫었다.
친구들은 환호를 지르며 각자 컴퓨터로 게임이나 웹서핑을 했지만
나는 멍 때리며 수업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고등학교 때는 정보 시간에 캐릭터를 조종하는 코딩 게임 같은걸 배웠는데
너무 재미없고 어려워서 매번 친구에게 sos를 청했다. 
수험생 때는 컴퓨터를 인강 보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전적대를 다닐 때는 컴퓨터를 강제 재부팅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교수님께서 본체의 전원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그리고 20년도엔 수능성적에 맞춰 어쩌다 보니 컴공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삼반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온 만큼, 열심히 다녀보자는 생각에 학술학회에 가입했다.
‘Hi-arc(하이아크)‘라는 교내 알고리즘 학회였다.
같은 과 선배님께서 알고리즘 강의를 해주시고, 그 강의를 들으며 백준 문제를 푸는 스터디를 주로 진행한다.

첫 주차 과제가 개발환경 조성이었다.
IDE로 CLion을 설치하라고 하셨고, 그 방법이 포스팅된 블로그 링크를 올려주셨다.
컴맹인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고, 그걸로 삼일 동안 씨름을 했다.

블로그 설명과 내 컴퓨터의 화면이 조금씩 달랐고 자꾸만 에러가 떴다. 눈물이 났다.

힘들게 대학에 왔지만 자퇴할까 싶었고
이것도 못하는데 컴공 어떻게 다닐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오만가지 걱정을 시작했다.

일단 극도의 스트레스의 원천인 하이아크를 탈퇴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가입비로 1만원 낸 게 아까워서 '아직 스터디 시작 안 했으니까 환급해달라 하면 환급해주시겠지..?' 라며
학회장님께 뭐라고 연락드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자 내 상황을 알게 된 오빠가 단숨에 CLion설치를 해주었고
나는 고비는 넘겼다는 마음에 일단 하이아크를 탈퇴하지 않았다
.

2020.03.18~03.19 일기
20-1학기 하이아크 초급스터디 실시간 스트리밍 댓글창
2020.03.28 일기

 

 

1학년 1학기 때 초급스터디를 들으며 C++과 알고리즘을 처음 접했다. 정말 너무너무 어렵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랍어도 모르는데 아랍어로 된 말장난 퀴즈를 배우는 느낌이랄까?
오늘 배운 거 진~~짜 어렵다 싶으면 다음 주에 더 어려운 거 배우는 것의 연속이었다.
거의 매일 밤 울면서 강의를 듣고 백준을 풀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구글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네이버만 사용했지 구글에 뭔가를 검색해본 적도 없었고
거기에 검색하면 내가 지금 궁금해하는 것이나 문제점의 해결책이 나온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스터디장님께서 구글링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었지만 구글링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그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스터디장님께 직접 하나하나 질문을 했다.
질문하는 과정에서도 혼자 망상을 하며 ’혹시 지금 컴퓨터 끄셨으면 어떡하지..? 바쁘시면 어떡하지..?‘이러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겨우 질문 보내고 답장이 올 때까지 숨죽여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친절히 답변을 해주셨었지만, 구글링 1초면 바로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싹 다 질문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민폐였고 굉장히 귀찮으셨을 것 같다.. 아직까지도 죄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후..

 

 


 

그렇게 나의 컴공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점차 구글링에 익숙해지고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컴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이 분야가 재미없게 태어났을까, 왜 여기에 흥미, 관심이 없을까’ 자책하고 우울해했다.
이 분야가 재밌고 적성에 맞고 흥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고 비교하게 되고 자괴감이 들었다.
남들 다 오고 싶어 하는 학과이고 유난히 적성 맞는 학생들이 있는 과라서 그런지 적성에 안 맞는 내가 너무 싫었다.

2020.09.06 일기

 

 

입학 이후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여러 고민 글을 남겼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내 고민 사연이 당첨되어 평소에 존경하던 분과 전화통화를 한 적도 있었고,
에타에 남긴 고민 글이 베스트 게시물에 등재되기도 했다.

 

장문의 댓글도 많이 달리고 공감과 응원의 쪽지도 여러 개 와서 신기했다.
아직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응원 글들의 따뜻함은 마음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

 

 

1학년 때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2학년 때는 한 달마다 운 것 같고
아직도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개발 공부는 어떻게 주체적으로 하는 걸까?
재밌어 보이는 걸 만들어보라던데 나는 24년 평생 이 분야에 재미를 눈꼽만큼이라도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웹 만드는 것도 앱 만드는 것도 전혀 관심 없고 노잼이고 이미 있는 거 사용하기도 벅차다.
토이플젝하는 사람들이 그저 신기하고 부러웠다.

 

뭐든 잘하면 재밌고 그럼 더 하게 되고 더 잘해진다.
나는 재미없으니까 안 하게 되고 더 못하고 기피해왔다.
그 악의 순환고리를 끊고 싶었다.

일단 잘해보자고 다짐했다. 잘하면 나도 재밌어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힘겨웠던 하이아크는 최우수 스터디원을 몇 번이나 했고, 개발 스터디나 컴공 관련 특강도 이것저것 다 참여했다.

그리고 나는 개발을 못하니까 학점이라도 잘 따놓자 싶어서 학점에 목매고 강박적으로 A+을 받으려 노력했다.
학교 수업 녹강을 3번 4번씩 반복해서 보고 모든 과목의 정리노트를 만들고 n회독을 한 후 시험을 봤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가 컴공 쪽으로 취직을 안 하게 될 때 생길 매몰비용이 커지는 기분에 괴로웠고,
그러면서도 취업할 때 전공과목을 살려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슬펐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어느 정도 나오니까 그게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결과가 나쁘면 난 노력해도 안된다며 얼른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러 떠났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컴공이 좋아진 건 더욱 아니다.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목표는 없고 방향도 모르는 채 노만 열심히 젓는 느낌이다. bar 없는 높이뛰기 연습만 주구장창 하느라 지쳤다.

2020.06.12 일기
친구한테 징징대는 나..😟

 

 


 
 

 

하이아크에서 알게 된 동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개발이 재밌고 백준 푸는 게 재밌다고 했다.
어떻게 이게 재밌지..? 아니 그니까 실력이 올라가는 건 재밌을 수 있는데
백준이나 개발 자체가 재밌다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하는 서울대 합격생들도 당연히 공부보단 유튜브 보는 게 재밌고
공부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인풋만큼 나온 결과물이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코딩은 코딩하는 그 과정 자체를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정말 신기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 테고..

그래서 동기한테 물어봤다.
근데 본인도 개발할 때 오류가 나거나 백준이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받기는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0만큼 괴로웠다면, 문제를 해결했을 땐 100만큼 기쁘다고 했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다.
풀면서 너무 괴롭고 눈물이 나고 속상한 마음이 100이라면 해결했을 때의 기쁨은 10 정도도 안된다.
왜 그럴까? 난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수험생 때는 ‘대학만 가면 걱정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게요ㅜㅜ’라며 빌었다.
정말 그럴 줄 알았지만 막상 대학에 오니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고 여기서 1등을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처럼 취업하고 나서도 승진을 위해, 1인분은 하고 싶은 마음에 또 다른 힘든 나날들이 펼쳐질 것이다..

행복을 미루는 건 끝이 없다.

끝을 만드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인 것 같다.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재미로 하는 건 취미지 직업이 아니다.
아무리 컴공이 적성에 맞고 재밌어하는 사람들도 다들 고민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재밌으니까 쉬울 거야. 저 사람은 재밌으니까 많이 할 수 있고 잘하는 거잖아.' 라며 합리화하고
자꾸만 마음의 문을 닫으려 했었다.
물론 나보다 상황이 낫기야 하겠지만 실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눈도 높아지기 때문에 다들 힘든 게 있을 것이다.

남의 노력을 쉽게 생각하지 말자. 그들도 참고 견디고 이 악물고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걱정, 고민할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영어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인프런 강의를 듣고 백준을 풀고 운동을 했다.

컴공에 지지리도 머리 없는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게 하나 있었다.

'꾸준함'.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왔고, 지금은 중1 때부터 다니던 헬스장에 매일 가서 운동을 한다.
20살 때부터 4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고 뭐든 개근을 하는 것은 자신 있다.


내가 제일 잘하지는 못해도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실력이 제일 좋을 수 없다면,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고민 글을 미소 지으며 읽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래는 유튜브 어딘가에서 봤던 말이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모른다고 물감 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일단 물감을 여러 개 짜 놓으면 나중에 목표가 생겼을 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목표를 못 정했다고 낙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라.'

 
 

 

 

그래도 내가 컴공에 와서 얻은 좋은 점 한 가지가 있다.

'재미없는데도 꾸준히 했다는 뿌듯함‘

이렇게 재미를 못 느끼고 싫어하는 공부를 꾸준하게 하는 나 자신이 좀 좋아졌다는 것이다.
지금 열심히 해놓아야,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게 다른 분야더라도
미련 없이 갈아탈 용기가 생길 것 같아서 한 것도 있고
,
삼반수 때 열심히 산 기억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것처럼
지금 열심히 살았다는 경험 자체만으로도 언젠가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한 것도 있다
.

어찌 되었건 이렇게 하다 보면 나도 조만간 잘 맞는/재밌는 분야를 찾게 되거나
미래의 방향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과가 안 맞아서 슬퍼하는 후배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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